구홍과 저는 AG 랩에서 한 팀으로 일하고 있지만, 실상은 각자 은밀히 무슨 일을 꾸민 뒤에 다짜고짜 공유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작고, 단순하고, 느닷없고, 끊임없이”라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면 무엇이든 좋다는 믿음이 있는 덕분이죠. AG 랩에서 기습적으로 공개한 하이퍼링크 토크 역시, 여러분만큼이나 저에게도 느닷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소개이자 질문, 내지는 일종의 요청인 이 글에 대해, 저 또한 기습적으로 응답을 작성하는 까닭입니다.

"하이퍼링크는 클릭하면 열리지만, 클릭하지 않은 세계 또한 열어둔 채 작동합니다.” 이 말은 하이퍼링크가 가진 경로로서의 기능 외에 무언가가 더 남아있음을 암시합니다. 요컨대 하이퍼링크는 과정일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결과입니다. 마치 어떤 대상을 찍은 사진이 대상을 가리키는 지표인 동시에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작품인 것처럼요.

그렇다면 AG 랩이 ‘하이퍼링크’를 만든다는 말도 이제는 사뭇 다르게 들립니다. 크고 작은 웹페이지를 만들며 그 내용을 충실히 채워나가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쩌면 AG 랩은 그저 하이퍼링크를 만들고 그것들의 생태를 실험할 뿐일지도 모릅니다.

가령 네오시티를 통해 선보이는 이른바 AG 랩?은, 어떠한 CSS도 덧대지 않은 채 오직 <ul>과 <li> 태그만으로 하이퍼링크의 목록을 작성합니다. 웹의 유구한 관습에 따라 파란 밑줄을 입은 하이퍼링크는 더 이상 자신을 뽐내지 않고, 그저 목록의 일원을 자임할 뿐입니다. 그럼으로써 하나의 파란 색면이라고 불러도 좋을 게슈탈트를 만들어 내는 것이죠.

놀랍게도 하이퍼링크를 만드는 HTML의 <a> 태그는, href 속성에 “#”을 부여함으로써 아직 존재하지 않는 페이지에 대한 참조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연구 중)’이 붙은 하이퍼링크가 바로 그런 것이죠. 하이퍼링크는 “그곳에 무언가가 존재했다”는 지표적 기능을 넘어, “그곳에 무언가가 존재할 것이다”는 암시로도 작동합니다. 요컨대 하이퍼링크는 웹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입니다.

그런가 하면 구홍이 하이퍼링크 토크를 위해 (또 한번 느닷없이) 만든 hyperlink.today는 하이퍼링크의 또 다른 구조를 제안합니다. 여기에서 이름과 소개 한마디, 그리고 링크를 작성하면 새파란 원형의 하이퍼링크가 생성됩니다. 그리고 그 원은 곧바로 다른 모든 원들과 연결을 이루죠.

들뢰즈-가타리의 ‘리좀’처럼 하나의 중심 없이 얽힌 이 원들은 그 자체로 웹의 표상입니다. 나아가 하이퍼링크가 특정한 목적지에 이르기 위한 경로를 넘어, 목적지와 경유지를 넘나드는 유동적 형태를 띠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렇습니다. 하이퍼링크는 결코 하나의 시간이나 공간으로 붙잡을 수 없습니다. AG 랩이 R&D 부서를 표방하며 끊임없이 하이퍼링크의 생태를 실험하지만, 도무지 하이퍼링크가 무엇이라고 단언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까닭으로 AG 랩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합니다. 웹에 있어서 핵심을 꿰뚫는 일격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끝없는 ‘하다’를 통해 그 테두리를 더듬는 것만이 가능하니까요. 그것은 제가 웹을 명사보다 차라리 동사로 바라보며, AG 랩의 작업이 “작고, 단순하고, 느닷없고, 끊임없이”라는 수식언으로 희미하게 정의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보는 웹페이지는 사실 무수한 요청과 응답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서버에 웹페이지를 달라는 요청을 보내면, 그 응답으로 요청한 웹페이지를 받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하이퍼링크는 응답을 받지 않은 채 요청의 가능태를 앞서 드러냅니다. “하이퍼링크는 클릭하면 열리지만, 클릭하지 않은 세계 또한 열어둔 채 작동합니다.” 다시 말해 하이퍼링크는 클릭하면 응답하지만, 응답되지 않은 요청 또한 열어둔 채 작동합니다. 그러니 기습적인 응답인 이 글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하이퍼링크 토크는 물론 유효한 요청입니다. 이 사실을 글의 말미에 밝히는 것에 다소 유감을 표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이 또 하나의 요청으로 작동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이퍼링크를 통해 응답된 세계가 또 다시 무수한 요청의 가능태를 품고 있는 것처럼요.